마음에 들지 않으면 짖기 시작한 이유
거실 바닥 한쪽에 하얀 기저귀를 펴놓고 뚜봉이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뚜봉이도 우리 집이 아직 낯설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강아지와 함께 사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뚜봉이가 어디로 가는지 괜히 눈이 따라갔습니다. 기저귀 쪽으로 가면 그대로 지켜봤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또 어디로 가는지 바라봤습니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때가 아니어서 작은 행동 하나도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뚜봉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곳에서 볼일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며칠이 걸렸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들이 주말마다 데려왔다가 다시 데려가던 시기라 생활이 계속 이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뚜봉이가 집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기저귀 근처로 가면 한동안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내기보다는 뚜봉이가 어느 자리를 편하게 느끼는지 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뚜봉이는 사람 얼굴도 많이 살폈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바로 다가오지 않았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몇 번의 주말이 지나면서 뚜봉이가 집 안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조금씩 편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움직이면 고개부터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혼자 거실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기저귀가 놓인 자리도 그렇게 익혀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쪽으로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저귀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도 가족들이 크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바닥을 한번 보고 뚜봉이 얼굴도 한번 바라봤습니다.
“아, 이제 여기를 아는 건가.”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은근히 반가웠습니다. 함께 지내는 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전에 적었던 “처음으로 '주세요'를 배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뚜봉이는 뭐든 한 번에 달라졌다기보다 우리와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익혀가는 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아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가족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방 앞을 박스로 막아놓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뚜봉이가 가까이 오면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저귀를 갈아놓는 일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물그릇을 살피고, 밥을 먹었는지 보고, 뚜봉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같은 생활이 됐습니다.
저도 예전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뚜봉이가 기저귀 쪽으로 가는지, 제대로 자리를 잡는지 괜히 한번 더 살펴봤습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처럼 멀찍이 떨어져 보기보다 뚜봉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도 강아지도 서로 맞춰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며칠 만에 익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실 바닥에 놓인 하얀 기저귀와 그 주변을 서성거리던 뚜봉이 모습이 더 또렷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뚜봉이도 집 안에서 어디가 자기 자리인지 알아가는 중이었고, 우리도 뚜봉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한 번에 잘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주말이 반복되고, 같은 자리에 기저귀가 놓이고, 가족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익숙해졌습니다.
그날도 거창한 일은 없었습니다. 뚜봉이는 기저귀 위에서 볼일을 본 뒤 아무렇지 않게 몇 걸음 옮겼습니다. 저는 잠시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기저귀를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일이 어느새 우리 집에서 아주 평범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보면 뚜봉이의 생활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