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누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라 거실에는 아직 저녁 분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TV에서는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식탁 위에는 치우지 못한 그릇 몇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뚜봉이는 소파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우리 집이 완전히 편한 곳은 아니었는지, 누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고개를 들고 사람 움직임부터 살폈습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한마디 했습니다. “뚜봉아.” 간식을 들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손짓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턱을 대고 있던 뚜봉이의 귀가 순간 쫑긋 올라갔습니다. 우연인가 싶어 잠시 뒤 다시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정확히 내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더니 뚜봉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거실 바닥 위로 작은 발톱 소리가 또각또각 이어졌습니다. 바로 달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 걸음 오다가 멈추고, 다시 내 얼굴을 보고, 조금 더 가까이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가족들이 금세 관심을 보였습니다. 누군가 “자기 이름 아는 거 아니야?”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족들이 돌아가며 “뚜봉아” 하고 불렀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느라 뚜봉이는 꽤 바빠 보였습니다.
딸도 방문 쪽에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만 해도 자기 방 가까이 오는 것을 불편해했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부러 문 가까이에 서서 뚜봉이를 불렀습니다. 뚜봉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쪽으로 몇 걸음 움직였습니다. 그 장면 하나만 봐도 집 안 분위기가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뚜봉이 이름을 더 자주 부르게 됐습니다. 현관 가까이 따라 나오면 “뚜봉아, 거기 있어” 하고 불렀고, 거실 한쪽에 보이지 않으면 괜히 또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방석 뒤나 소파 옆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 표정부터 살피고 움직이던 뚜봉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이름이 들리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귀를 세우고 고개를 돌린 뒤 익숙한 발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고 있으면 제가 앞서 남겼던 "처음에는 눈치만 보던 뚜봉이가 달라진 순간"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재미있는 건 같은 이름인데도 가족마다 부르는 소리가 조금씩 달랐다는 점입니다. 아들은 장난스럽게 길게 불렀고, 딸은 가까이 오라는 듯 짧게 불렀습니다. 아내가 부를 때는 간식이 나올 때가 많아서인지 뚜봉이 반응이 조금 더 빠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뚜봉아”부터 찾았습니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작은 얼굴이 나타나면 괜히 반가웠습니다. 이름 한 번 부르는 일이 어느새 하루의 익숙한 인사가 된 셈입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이 정말 뚜봉이가 처음 이름을 알아들은 날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낯선 집이라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저녁이 하나의 시작처럼 남아 있습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두세 번 불러야 반응하지 않습니다. 소파에서 쉬고 있다가도 “뚜봉아” 하면 고개부터 듭니다. 멀리 있으면 발소리가 이어지고, 가까이 있으면 눈만 들어 사람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날 저녁에는 그저 귀를 한번 세우고 천천히 걸어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반응 이후 우리 가족은 뚜봉이를 더 자주 불렀고, 뚜봉이도 우리 목소리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밤이 깊어 TV 소리가 줄어들면 뚜봉이는 자기 자리에서 편하게 눕습니다. 가끔 이름을 한번 불러보면 감았던 눈을 살짝 뜨고 고개만 듭니다. 처음에는 그 반응 하나가 신기했는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웃음만 납니다. 우리 집에서 “뚜봉아”라는 말은 이제 누군가를 부르는 평범한 가족의 목소리가 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면 뚜봉이의 생활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