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누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현관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뚜봉이 반응부터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거실 바닥에 길게 엎드려 있던 녀석이 귀부터 세웁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사람이 들어오면 벌떡 일어납니다.

특히 아들이 들어오는 날에는 움직임이 더 빨랐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주변을 빙빙 돌고, 꼬리를 흔들며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뚜봉아, 형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우리가 재미로 붙여준 호칭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뚜봉이가 그 말을 사람과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형이라는 말에 현관부터 바라봤습니다

뚜봉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한다기보다 모든 사람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눈으로 따라가고, 가까이 가면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만나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아들이 밖에 있다가 들어오면 다른 가족이 왔을 때보다 더 빠르게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아들이 소파에 앉으면 바로 근처에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방에 들어가 보이지 않기에 장난삼아 “형 어디 갔어?”라고 했습니다. 뚜봉이는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아들이 들어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가족들끼리도 재미있어졌습니다.

누나라는 말에는 방문 쪽으로 향했습니다

딸과 뚜봉이의 관계가 달라진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딸이 방문 앞을 막아 둘 정도로 뚜봉이를 어려워했습니다. 뚜봉이 역시 그쪽으로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딸이 방에서 나오면 뚜봉이가 뒤를 따라다니는 날이 늘었습니다. 딸이 소파에 앉으면 가까운 곳에서 기다렸고, 간식을 손에 들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갔습니다.

거실에서 “누나 어디 있어?”라고 말하면 뚜봉이가 방문 쪽을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 딸이 방 안에서 “뚜봉아” 하고 부르면 귀를 세우고 바로 그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예전 모습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럴 때마다 웃었습니다. 한때는 서로 가까이 오는 것조차 어색했던 둘이 이제는 이름과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찾는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가 앞서 남겼던 "우리 집에서 처음 이름을 알아들은 날"의 저녁 풍경도 떠오릅니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가면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내를 따라다니는 모습은 또 조금 달랐습니다.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가면 뚜봉이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냉장고 문이 열리거나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 주방 입구에 앉아 안쪽을 바라봤습니다.

가족들이 “할머니한테 가봐”라고 하면 아내 쪽을 바라보는 경우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정확히 ‘할머니’라는 말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디를 보고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자기 나름대로 익혀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내가 거실에 앉으면 그 주변을 맴돌다 가까운 자리에 눕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챙겨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목소리 뒤에 어떤 일이 이어지는지 생활 속에서 하나씩 기억한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라는 말에 나를 바라보던 순간

내가 집에 들어올 때 뚜봉이는 현관 가까이까지 나왔습니다. 한동안 다리 주변 냄새를 맡다가 내가 거실에 앉으면 옆으로 따라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족들이 장난삼아 “할아버지 어디 있어?”라고 말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뚜봉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저녁에는 거실에 모두 모여 앉아 하나씩 불러봤습니다.

“형한테 가봐.”

뚜봉이는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아들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누나한테 가봐”라고 했더니 딸 쪽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라는 말에는 아내를 바라봤고, 내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들어 나를 봤습니다.

딸이 웃으면서 “진짜 구분하는 것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뚜봉이는 우리가 왜 웃는지 모르는 얼굴로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우리 집 사람들을 자기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뚜봉이가 형과 누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말을 정확히 어디까지 알아듣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다만 오래 지켜보다 보면 가족마다 반응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느껴집니다.

아들이 들어오면 유난히 반가워하고, 딸이 움직이면 따라가고, 아내가 주방에 가면 뒤를 살핍니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가까운 자리에서 한동안 머뭅니다. 같은 집에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쌓이면서 뚜봉이도 우리를 자기 나름대로 구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즘도 거실에서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뚜봉이의 귀가 먼저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형”이라는 말에 현관을 한번 바라보고, “누나”라는 소리에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거창한 생각보다 그냥 웃음이 납니다. 한때는 집 안 사람들을 낯선 얼굴처럼 바라보던 뚜봉이가 이제는 누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가족이 됐습니다. 저녁이 깊어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 모이면 뚜봉이는 그 가운데를 한번 천천히 둘러본 뒤 익숙한 자리에 몸을 내려놓습니다.

함께 보면 뚜봉이의 생활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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